배상호 선교메모(2014년 1월 8일)
<선교여행기>
아내와 함께 3박 4일 일정으로(1월 3일 ~ 6일) 루세나를 거쳐 마린두케를 다녀왔다.
먼저 마린두케 길목에 있는 루세나를 들러 이정희 선교사와 반조(Banjo) 목사를 만났다. 아내는 이정희 선교사를 위해 마닐라에서 한국 떡을 주문해 가져갔고, 나는 오토바이 사고로 치료를 받고 있는 반조 목사를 위해 봉투를 준비했다. 두 사람을 만나니 마음이 아팠다. 이 선교사는 독신으로 홀로 사역하는데다 건강도 좋지 않았다. 반조 목사는 얼마 전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8번째 사고를 당했는데 이번엔 상태가 심각하여 한 달이 넘었는데도 걷는 것조차 불편해 보였다. 사고로 심장까지 문제가 생겨 한 병원에서는 수술을 해야 한다 하고, 다른 병원에서는 약물로 치료하면서 좀 더 기다려보자고 한단다.
반조 목사는 현지인 선교사로 루세나 지역에 파송 받아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세 교회를 세웠고 매주 자기가 기른 사역자들과 함께 각 교회를 왕래하며 예배와 성경공부를 인도해왔다. 반조 목사는 내가 신학 공부를 시키고 목사 안수해서 세운 동역자요 엄청 성실하고 부지런한 사람인데, 이젠 거동조차 불편한 사람이 되었고 어쩌면 감당하기 어려운 비용이 드는 심장 수술을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 나는 반조 목사의 건강, 치료비, 세 교회에 대한 염려, 거기에 내가 사준 오토바이로 사고를 당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다소 어지러웠다.
집을 나선지 12시간 만에 마린두케 선교관에 도착했다. 각 교회 담임목회자들과 사역자들, 그리고 기독교학교(초등학교) 교사들과 직원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센타에서는 매 주 금요일 저녁이면 흩어진 저희 동역자들이 모여 정기기도회를 갖는데, 이번엔 내가 특별히 초등학교 교사들도 참석하라고 했다. 어려운 환경에서 헌신하는 그들이 너무 고마워 식사라도 풍성하게 대접하고 싶어서였다.
다음 날 아침, 센타 교회에서 Reymond와 Miriam 부부의 은혼식이 있었다. 미리암 부부는 이 교회 초창기 교인이요 가장 신실한 교인이다. 사실 내가 마린두케 방문 일정을 이 시기로 맞춘 것은 미리암 부부의 은혼식 때문이었다. 미리암은 내가 꼼짝없이 자기 은혼식에 참석하게 만들기 위해 일 년 전부터 약속을 받아놓고, 우리 부부를 열 명의 대부, 대모 중 첫 번째에 올려놓았다.
내가 은혼식에 참석해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집에서 출발할 때 우리 부부는 은혼식을 간단한 예식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저 가까운 지인들과 교인들을 초청해서 예배드리고 식사나 나누는 것이겠거니 했다. 그래서 알버트 목사가 내게 주례를 같이 하자고 할 때 그럴 필요 있느냐며 사양했고, 또 필리핀 사람들이 중요한 예식에 참석할 때 입는 예복도 준비하지 않고 집을 나섰다. 그런데 막상 와서 보니 그게 아니었다. 일반 결혼식과 똑같이 모든 형식 다 갖추어 하는 것이 아닌가? 모든 들러리, 대부와 대모들, 한결같이 정식 예복을 다 갖추었다. 성경에 나오는 혼인잔치에 예복입지 않고 들어왔다 쫓겨난 사람 생각이 날 정도로 우리 부부만 아주 어색한 꼴이 되어버렸다.
예식 시간만 한 시간 반, 각종 복잡한 예식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했다. 물론 예식 후 리셉션도 초혼 때와 똑같이 좋은 음식에 음악, 축하행사가 이어졌다. 옆에 앉은 어니(Ernie) 목사에게 가만히 말했다. “여기는 은혼식을 초혼 때와 똑같이 하네요.” 어니 목사가 대답한다. “초혼 때보다 더 하답니다.”
피로연에 앉아 있는 동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하는데 돈이 얼마나 들었을까? 도청에서 근무하는 미리암의 일 년 봉급이 다 달아났겠다.”
또 미리암 부부가 지난 25년 동안 얼마나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으면 은혼식을 이렇게 거창하게 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 아내에게 말했다. “이 두 사람은 정말 행복한 부부였던 것 같소.” 그런데 피로연 때 그간의 결혼생활을 말해보라는 하객들의 요구에 간증하는 것을 들으니 그게 아니었다. 남편 Reymond가 사우디에서 일할 때 있었던 일을 말하는데 참으로 힘든 시련이 이 부부에게도 있었다. 레이몬드가 마법사(witch-doctor, 필리핀에 이런 사람들이 도처에 많음)의 마법에 걸려 모든 기억을 상실했고, 그 결과 자기가 결혼한 사실도 잊고 자기 아내도 집도 기억하지 못해 다른 여자와 결혼하여 살았었다고 한다. 미리암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남편이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도 절망스러웠을 턴데, 다른 여자와 결혼이라니.... 많은 아픔이 미리암의 흐르는 눈물 속에 배어 있었다. 그리고나서 미리암은 말했다. “초혼 땐 불신자로 만나 결혼하였고 고난이 많았으니, 이제 25주년을 맞이해 신자로서 새로운 부부의 삶을 살기 위해 은혼식을 준비한 것입니다.” 그 말 들으니 미리암이 왜 이렇게 거창한 은혼식을 준비했을까 좀 이해가 되었다.
피로연 후에 Bognuyan 교회를 세울 부지를 둘러보러 갔다. 인구가 밀접된 요충지역에 있는 330평의 땅, 아주 맘에 들었다. 김두봉 장로님이 부지구입을 위해 1,500만원을 헌금하여 그 동안 적당한 땅을 주시도록 주님께 많이 기도하며 찾았다. 외국인이 끼면 터무니없는 값을 부르는 현지인의 속성을 잘 알기에 알버트 목사를 통했다. 알버트 목사는 한 동안 매일 그 땅을 찾아가 기도한 후, 마닐라에 살고 있는 주인을 찾아가 시세의 절반 가격에 사기로 협상했다. 이젠 남은 것은 등기 이전이 두 번에 걸쳐 이뤄져야 하는 약간 복잡한 서류작업이 탈 없이 진행되고 그 사이에 주인의 마음이 변치 않는 일이다.
다음 날은 2014년 1월 5일 새해 들어 첫 주일이었다. 나는 마린두케중앙교회에서 “경계를 넓히라”는 제목으로 주일설교를 했다. 이제까지 하나님이 마린두케에 14개 교회와 그밖에 여러 전도처를 주셨고, 또한 이미 네 명의 현지선교사를 여러 지역에 파송하여 6개의 교회를 세울 수 있게 하셨고 금년에 두 명을 Samar와 Iloilo 지역에 더 파송할 예정이지만, 앞으로는 더 나아가 캄보디아나 라오스, 베트남과 같은 나라로 세계를 상대로 선교사를 파송하여 우리 경계를 넓히자고 설교하였다.
오후에는 험한 산길을 타고 창립 2주년을 맞는 사야오 교회에 갔다. 산악 길이 몹시 험했다. 큰 도로에서 교회까지 10km 구간을 가는데 자동차로 한 시간쯤 걸렸다. 차(18년 된 Jeepney)가 너무 낡은 탓도 있지만 엔진이 너무 열을 받아 5번 넘게 멈춰서 후드를 열고 라지에타에 물을 채우고 엔진에 물을 부어 열을 식히면서 가야 했다. 차 안에 있는 우리 모두는 험한 길에 이리저리 춤추듯이 흔들렸는데 공교롭게도 “사야오”라는 말이 현지 말로 “춤추다”는 뜻이기도 하다.
가는 길은 험했어도 2주년 기념행사는 보람되었다. 나는 “왜 믿음인가?”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성경이 믿음을 금보다 귀하다고 한 것은 금으로는 천국과 영생을 얻을 수 없으나, 믿으면 얻을 수 있으니 더 귀한 것이라 했다. 이어진 결신 초청에 약 30 여명의 사람들이 나왔다. 예배 후 우리는 산과 바다가 만나는 교회 뜰 해변에서 마치 피서지에 온 듯한 기분을 느끼며 교회에서 준비한 풍성한 바다 음식으로 저녁 친교를 나누었다.
0개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