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전쟁에 동참하신 동역자님께! 사랑하는 교회와 동역자님의 보냄을 받아 태국에 온지 내년 2월로 만 33년째가 됩니다. 처음 선교지로 출발할 때 마음과 지금의 마음은 변함없이 여전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 면서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한 점의 흔들림을 억제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입 니다. 그래서 소감을 몇 글자 적어봅니다. 선교란? 선교사란? 현장에서 과연 무엇을 하며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보내는 선교는 과연 언제까지 해야 될까? 해가 바뀔 때마다 받는 메시지는 이제 30년이 넘 었으니 자리 잡았을 것이라 생각하고 선교 후원을 중단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늘 제 머 리 속에 맴돌고 있는 질문은 “선교와 선교사”란 단어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제 머리에 체온 계를 들이대면 37.5도가 넘게 나옵니다. 코로나 시대에 의심받기 아주 딱 이징요. 함께 사역 하는 둘째인 아들 정태은이는 나에게 다가와서 체온계를 들이대며 ‘릴렉스하라’고 웃으며 말 하면서 얼굴과 발을 주물러 줍니다. 1984년 선교에 부름 받고(제 표현은 선교에 헌신 당하고), 지난 30여년을 이곳 태국에서 무슨 일을 했을까 생각해보니....... 태국에 도착한 후 1주일 만에 언어공부 시작하여 15개월간 태국어를 배우고 태국 교육부에 서 실시하는 초등학교 6학년 과정을 통과한 점수와 함께 수료증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교회 개척을 위해 관심 있는 지역의 리서치를 마친 후, 방콕 외곽으로 이사를 했습 니다. 주일에는 동네 나무 밑에서 주일 예배를 식구끼리 드리다, 드디어 새로 짓고 있는 상 가 건물 하나를 렌트해서 호산나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그리고 1990년 3월 태국교회 못자리 판을 만드는 작업을 하기 위해 태국주일학교연구원을 설립하고 교사대학, 어린이 캠프, 청소 년 캠프등 주로 어린이 사역을 위한 일을 해왔다. 사실 1999년 5월 시작한, 어린이 사역의 꽃이라고 하는 방콕은혜종합학교와 방콕은혜국제학교 사역은 어린이 사역위해 주신 선물이 며, 앞으로 자립하는 방법을 찾기 위한 시도도 포함되어있었습니다. 선교지에서 처음 6년간 선교 사역 후, 2년간 안식년을 얻어서 1994년 첫번째 안식년을 주 일학교 자료를 찾기 위해 미국으로 가서 리버티신학대학원에 입학하였는데, 그곳에서 미국 주일학교 대부이신 엘머 타운즈박사로 부터 교회 성장학, 슈미트박사에게서 기독교 교육학 을 배우고, 학교 설립자인 제리 포웰박사의 추수감사절 말씀 중 도전을 받아 학교 사역에도 처음으로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목회하시는 토마스로드침례교회 주일학교 시스템을 배우기 위해 어린이주일 -
2 - 학교 보조교사로 아내와 함께 들어가서 영아 과정부터 실습하며 배웠습니다. 그리고 1년만인 1995년 여름 짐을 싸서 부랴부랴 선교지로 돌아왔습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나에게 주어진 공식적인 안식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선교지 일이 너무 재미있고 미쳐서 우리 아이들 생각도 하지 못하고 2년 받은 안식년 기간을 1년 만에 마치고 선교지로 돌아온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적응하느라 좀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아이들을 위해 신경을 쓰지 못하고 함께 하는 시간이 없었던 것을 생각하면
1986년 1월 18일 결혼하고,
1986년 7월 선교사로 허입되어 바울의 집에 입주하여 훈련을 받고
1988년 1월 18일 선교사 파송 예배(방배동 새순교회에서)를 드리고
1988년 2월 26일 선교지 태국 방콕에 어린이 사역을 위해 도착해서
지금도 방에 콕 처박혀 지내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곳 내일은 저 곳"하며 찬양을 해봐도 내 발걸음은 도로 방콕입니다. 갈 곳이 없습니다. 대 도시의 삶이 팍팍하지만 방콕에서 살고 있습니다.
선교지소식
방콕에 정석천입니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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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20. 12. 23. 04:5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