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총체적 선교(Holistic mission)를 하셨다. 가난한
자들과 삶을 나누며 그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복음을 전하셨다.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마
11:5). 영, 혼, 육을 치유하는 선교의 본을 보여 주셨다. 이 세상에는 “주린 사람” “병든 사람”
“나그네 된 사람” “헐벗은 사람” “병든 사람” “옥에 갇힌 사람” (마 25:35-36)들로 가득 차 있다. 풍요한 세상인 동시에 궁핍한
세상이다. 주님께서는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마 25:40)이라고 말씀하신다. 많은
선교사들이 궁핍한 세상 속에서 고통 받고 상처받은 백성들을 섬기고 있다.
가난은 “물질적 혹은 정신적인 면에서
무엇이 모자라는 상태”를
말한다. 국제기구에서 가난을 해결하기 위하여 상상할 수 없는 많은 돈을 투입했지만 아직도 가난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가진 자와 가난한 자들이 가지고 있는 “가난”이라는 생각의 차이 때문이라고 본다. 주로 부자들 즉 가진 자들은 가난을 물질적인 측면에서 바라본다. 먹을
것과 입을 옷들의 부족, 질병, 더러운 물, 오염된 환경 등을 가난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 가난한 자들은
정신적인 차원에서 가난을 말할 때가 많다. 필자는 온두라스에서”생존의 현장”인 렌카 인디언 마을에서 사역하고 있다. 삶이 아니라 “생존”이다. 많은 동네 사람들을 보면 물질적인 가난과 함께
“가난이라는
사고”속에 빠져 있다. 아무 소망 없이 자신의 정체감을 상실한 체 생각 없이 운명적으로 살아간다. 더불어 살면서 느끼는 것은 이들의 물질적 가난은 조상대대로 살아 온 삶의 모습일 뿐이다.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없이 “가난하게” 살아가기에 별 다른 불편함과 어려움이 없다. 내부자적 관점에서 말이다. 그러나 외부적인 관점에서 국제기구나 구호기관에서
먹을 것과 질병을 구제, 깨끗한 물 공급, 오염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하여 노력과 돈을 쏟는다. 잠시 이들에게 행복함을 줄 뿐이다. 이들의 가난은 물질적 가난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부의 구호 선교기관들이 도움을
주기 위하여 대기 (?) 하고 있다. 또한 현지인들도 선교기관이나
선교사들을 “은행”으로 여긴다. 선교사들도
단기간에 뭔가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으로 오랜 시간 함께 말씀을 나누면서 삶의 변화를 가져오는 사역 (MINISTRIES)
보다가는 쉬운 선교 즉 MONEYSTRY (돈 선교)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씨 감자를
먹고 새로운 씨 감자를 부탁하는 것을 씨 감자의 중요성을 가르치기 위하여 거절하였더니 다른 선교기관에서 도와준다.
한 마을에 서너 그룹의 외부 주도의 개신교회 모임이 생긴다. 작은 마을에 몇 개의 개신교회
건물들 (모두 외부에서 헌금해서 세워진)이 건축된다. 소위 “프로젝트”라는 많은 것들이 외부의 도움으로 시작되었지만 현지인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아 사용이 되지 않는다. 사탕과 선물들을 나누어 주면서 연신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사명(?)을
다하는 모습들을 본다. 마치 사진을 찍는 것이 사역인양……. 남루한
의복과 가난한 집들 앞에서 기념 사진 (?)을 찍으면서 웃으면서 난리 법석으로 선교하는 모습들도 있다. 가난한 자는 믿음이 없고 잘 살면 믿음이 있는 척 폼(?) 잡는
모습들 등 이러한 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느끼는 것은 결국 “사역”으로 인해 선교지와 현지인들을 병들게 하고 있지는 않는지 고민해 본다. Rick Johnson이 말한 “Rice Missions이 rice Christians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Mission Frontier, 2008). 이제는 내부적인 관점에서 사역이 시작되어야
한다. 외부적 관점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선교사들은
삶을 나누며 현지인들의 필요를 찾아서 외부주도가 아닌 현지인들이 이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도록 “spare tire”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물론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기에 “천 년을 하루같이” 장기간 사역을 해야 할 것이다. 사역의
우선 순위도 물질이 먼저가 아니라 영적인 것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 정말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소망을
주고, 정체감을 세워주며, 이들의 운명적 사고를 바꾸어주는
것이다. 정신 사고의 변화가 없이는 아무리 많은 물질적인 도움을 준다 하더라도 가난에서 벗어나게 할
수 없다. 그러므로 물질적 도움이 아닌 영적인 도움이 필요한 것이다.
바로 복음만이 이들을 가난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다. 복음을 전하고 이들을 말씀 가르치고
제자 삼는 사역이 없는 선교는 영적인 재앙을 가져 올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언젠가 돌아가신 US Center for World Mission의 Ralph Winter 교수는
“외과
의사가 수술은 성공적으로 했지만 환자가 죽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가 30년 전에 사역했던 구아테말라 맘족 인디언들의 삶을 보면서 그들의 삶은 문명화된 모습으로 크게 변화했지만, 영적으로 죽어있음을 보면서 하신 말씀이다. 늘 그의 말을 생각하면서
사역을 돌아보게 된다. 렌카 인디언 마을에서 이들과 더불어 살면서 행여 나의 사역이 “수술은 성공적” 이었지만 영적으로 이들을 죽이지는 않을까 늘 고민하며 또 한 달의 사역을 마무리 한다. “수술도
성공적으로 하고 환자도 살리는 사역”이 되었으면 좋겠다. 주님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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